제 6장 보여주기와 말하기
첫째, 글과 그림을 합치기전 역사와 인식에 대해 살펴보면
1800년대 초, 서양에서는 미술과 글 사이가 가장 멀었다. 그림은 형태의 유사성, 빛, 색,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몰입했고 글은 보이지 않는 보물들인 감각과 정서, 영성, 철학 따위에 흠뻑 빠졌다. 그렇게 갈 곳을 잃은 그림과 글은 방향을 위로 잡았고 일부 화가들은 아예 그림도형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 외형도 외면적 의미도 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미술에서 주된 추세는 의미로 되돌아오는 것, 즉 현실 유사성이 아닌 개념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글의 영역에서도 이전의 난해하고 이중삼중으로 추상화된 언어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인 양식, 심지어는 구어체로까지 나아갔다. 산문에서도 언어가 훨씬 직접적으로, 좀 더 그림처럼 단순하고 빠르게 의미를 전달하게 되었다. '의미'를 포기하지 않고도 작가들은 뚜렷히 왼쪽으로 움직였고 그리하여 글과 그림이 충돌하게 된다.
다다이스트, 미래파, 그리고 다양한 개별 현대 화가들이 외형과 의미 사이의 장벽을 부수어 나갔고 대중문화는 '고급'예술이 지녔던 겉치례 없이 두 형식이 계속해서 맞부딫혀 왔다. 마치 긴 여행의 종착지에 이르렀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는 그런 본능처럼 이 지점을 가장 철저하게 파고든 것이 현대만화이다.
사실 '위대한' 회화나 '위대한' 문학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은 지난 150년 동안 달리지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자기 자신 속에도 있다. 많은 만화가들이 여전히 그림과 글을 다른 잣대로 재고 있고, '위대한'그림과 '위대한'글은 각각 충분히 훌륭하기만 하면 조화롭게 결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만화라는 예술형식은 오랜 역사가 있는데도 마치 최근의 발명품인 것처럼 낡은 매체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저주에 걸렸다. 새로운 매체들은 기존 매체를 모방하면서 생애를 시작한다.(영화는 필음에 담은 연극같았고, TV는 그림이 담긴 라디오 같았다.) 많은 만화가들이 다른 매체의 성과를 뒤쫒는 데에만 급급하고 오히려 다른 매체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 것을 일종의 지위상승으로 보고 있다. 만화를 글쓰기나 미술의 한분야로 바라보는 한 이런 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둘째, 글과 그림의 결합 방식을 몇 가지 확실한 범주로 나누면
- 글 중심의 결합 : 그림은 도해 기능은 있지만, 이미 대체로 완성되어 있는 텍스트에 그다지 새로운 의미를 더하지 않는다.
- 그림 중심의 결합 : 여기서 글은 시각을 통해서 전해지는 연속장면의 음향효과 구실에 그친다.
- 이중 결합 : 글과 그림이 함께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 첨가 결합 : 글이나 그림이 서로의 효과를 증가시키거나 정교화 시켜준다.
- 병렬 결합 : 글과 그림이 서로 만나지 않고 각자 다른 길을 간다.
- 몽타주 : 글이 그림의 일부가 된다.
- 상호의존 결합 : 여기서 글과 그림이 손을 맞잡고, 혼자서는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을 전달한다. 그렇다고 상호의존 결합에서 균형이 항상 수평적인 것은 아니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글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줄수록 그림은 더 자유로운 탐색을 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잘된 만화에서는 글과 그림이 호흡이 맞는 춤 상대처럼 서로를 번갈아 이끈다. 서로 이끌어가려 할 때는 경쟁 때문에 원래의 목표마저 무너질 수 있고 때로는 장난기 어린 작은 경쟁이 재밌는 결과를 빚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둘 다 각자 역할을 알고 서로의 강점을 받쳐줄 때 만화는 지금껏 영향을 받아왔던 그 어떤 예술 양식과도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된다.
결국 아래의 그림처럼 글과 그림 방식을 아무리 도표에 담아보아도, 결국에 모든 것은 만화가의 본능에 따르기 마련이다. 글과 그림의 결합은 과학이라기보다 연금술에 가깝다. 다행이도 현대의 몇 가지 강력한 마법이 존재한다. 그건 현대 언어의 풍부함이다.
제 7장 여섯 단계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인간의 두 가지 기본 본능인 생존본능과 생식본능에서 나오지 않는 모든 인간활동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매체에서 어떤 작품을 창작하든지 간에, 언제나 일정한 경로를 따르게 된다.
- 발상 · 목적 : 충동, 사상, 감정, 철학, 작품의 목정 등 작품의 '내용'
- 형식 : 작품이 취하는 양식, 책이냐 백묵그림이냐 의자냐 노래냐 조각품이냐 냄비집게냐 만화책이냐
- 작풍 : 예술의 '유파' 스타일의 어휘와 표현방식, 소재, 작품이 속하는 장르, 작품 하나가 한 장르가 될 수도 있다.
- 구조 : 모든 것을 합쳐내는 작업,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어떻게 배열하고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 기술 : 작품을 만들기, 기술과 실제적인 지식, 창안, 문제해결 방법 따위를 동원하여 '일'을 해내는 것
- 겉모습 : 상품 가치, 마무리, 작품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드라나 보이는 작품의 겉모양
1,2 단계에서 다른 단계를 지나쳐 6단계에서 어떠한 이유로 만화를 포기하는 대부분의 사람
3,4단계를 지나쳐 5,6단계를 거쳐 만화 공동체에 한 식구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3단계를 지나쳐 4단계를 고민하여 내 책을 만들어 충분한 수입을 올리고 최고급 일력이 되는 사람
3단계를 고민해 자신만의 정체성과 작풍을 만들어내 돈과 명예를 움켜쥔 사람(3단계의 경우 적의, 거부, 가난이 따를 수 있다)이 있을 수 있다.
모든 단계를 고민하고도 삶에 대한 것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고민하는 작가도 있다. 그런 작가는 1,2단계에서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하는데 2단계 형식을 선택하면 그는 탐험가로 나서는 것이 된다. 목표는 그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모두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발상이나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술이 목적이 되고 발상들이 떠올라서 내실을 채워줄 것이다. 이 길을 걸어온 작가들은 흔히 선구자이거나 혁명가였다. 사물들을 흔들어대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자신이 선택한 예술을 지배하는 기본 법칙을 의심한 예술가들이다. (Mckay, Spiegelman, Herriman, Sterrett, Moebius) 다른 예술형식에서는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버지니아 울프, 오손 웰즈
반면에 1단계를 목표로 선택하면 그의 예술은 도구가 된다. 그 예술의 힘은 그 속에 담긴 발상의 힘에 좌우된다. 여기서는 '이야기 서술'(논픽션은 '메시지 전달')이 발명보다 우선시된다. 하지만 이야기를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어느 정도는 형식의 발명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이것은 위대한 이야기꾼, 즉 만화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길로서, 그들은 매체를 잘 활용해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모든 능력을 쏟았다. (Schultz, Barks, Herge, Eisner, Nakazawa) 다른 예술 형식에서는 카프라, 디킨스, 우디 거스리, 에드워드 머로
다행이도 끝까지 이 선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작업 중인 작품을 바꿀 때 마다 변할 수도 있다. 어떠한 예술 작품도, 완전히 '내용'이나 '형식'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물론 다소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필요하지만 말이다.만화의 '조립공정' 스토리작가, 선화 담당, 펜선 담당, 컬러링 작업 담당 등으로 전문분야가 나누어진 경우 각자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고 할 때 내용이나 형식 둘다 고집하다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혼자 창작, 글, 그림을 도맡아서 해도 같은 문제는 생긴다.)
두 가지 초점 중에 한 쪽에 더 많이 몰입했던 작가일수록, 방향전환을 할 때 더욱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예술가가 어떤 매체에서 어떤 작품을 만들더라도, 의식하든 못하든 6단계를 거치게된다. 모든 작품에는 모호하더라도 어떤 목적이 있다. 어떤 형식을 취하고 어떤 작풍에 속하며, 일정 구조를 지닌다. 모든 경우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며 겉모습을 지닌다. 그리고 만화의 모든 측면이, 작가의 주된 관심사가 경제적 생존일 때 조차도 자기 표현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가 자기 예술의 모든 측면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법을 터득하고 자신과 예술 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할수록, '예술적인' 관심이 우위를 차지하기 쉽다. 실제로 어떤 측면이 만화가의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르는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련과정은 끝에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더디고 꾸준한 여행이다.
예술의 핵심에서 마침내 가장 중요한 물음이 제기된다.
발상·목적 or 형식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지?'
제 8장 색체에 관한 것들
흑백은 예술 뒤에 있는 발상들이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돼 의미가 형식을 앞서고 예술은 언어에 가까워진다. 단색 컬러에서는 형식 자체가 더 중요해지고 세계는 모양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더 표현적인 색체에서는 만화는 흡입력 있는 색체만이 줄 수 있는 감각들의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 흑백보다 컬러가 독자들을 더 쉽게 사로잡고 더 '현실'처럼 보게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현실'이외에도 더 많은 것을 보고자 한다. 아무리 컬러 만화가 발전을 해도 흑백만화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제 9장 하나로 합치기
어떤 매체에 숙달한다는 것은 제작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우회로로 소멸되는 예술가의 발상을 그나마 유용한 것으로 만들어 살아남는 정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다만 예술가와 대중을 가르는 벽을 깨부술 수 있는 단하나의 힘은 이해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지의 장벽 때문이다. 이것을 뛰어넘는 방법은 의사소통뿐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그 형식을 잘 이해해야만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으로 만화를 선택했으면 노력의 첫 단계인 만화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머리에서 깨끗이 지우는 것이다. 형식을 종종 천차만별인 내용들과 구별해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만화를 가장 잘 정의하려면 가장 개방적으로 시작해야한다. '연속예술'이라는 정의로 시작해서 다듬고 다듬어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라는 정의로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만화는 시각에 기반한 매체이다. 만화가는 시각 아이콘 언어의 세계 전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사실적인 구상미술에서 가장 단순화한 카툰화법, 상징기호와 언어의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말이다. 만화는 역사적으로 카툰 화법의 힘을 빌려 독자들의 몰입과 입체감을 끌어냈고, 사실주의의 힘을 빌려 보이는 세계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잡아냈다.
만화의 핵심은 완결성 연상의 힘을 빌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춤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만화가와 독자는 영원한 파트너이다. 이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낸다.
만화는 위대한 균형의 예술이다. 빼는 것과 더하는 것 또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뗄 수 없는 두 요소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글과 그림의 균형은 서로 점점 벌어져 모든 연결고리를 잃었다가 20세기 이후 대광란 속에 재발견되었다.
만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멋들어지게. 보이지 않는 것과 춤을 춘다. 그리고 만화의 언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모든 언어가 반드시 진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보이는 세계의 모든 그림은 반드시 보이지 않는 것(표현주의와 공감각미학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는 복잡한 것이라 기후가 다르면 같은 종도 다르게 진화한다. 그결과 일본은 표현주의, 주관적 움직임, 아이콘화된 캐릭터, 탈바가지 효과, 판형, 서술방식,꼴라쥬 등 만화 제작 기법들이 유럽과는 다양하게 발전했다.
만화가 다음 세기로 들어설 때 만화가들은 진실, 고급예술, 문학성 이 세가지 공통 분모에 호소하는 것 이상으로 높은 목표를 열망할 것이다. 만화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모든 작가들에게 엄청난 자원을 제공한다. 충실성과 제어력, 타협하지 않고 넓게 멀리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영화나 회화의 화상 묘사 능력에다 글의 친밀함을 더해 폭넓은 가능성과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필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와 배우려고 하는 의지와 볼 수 있는 능력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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